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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바람의 딸 한비야, 19세의 일기장- 어떻게든 참고 견디자..

조회수 : 171

작성일자2007-06-12 10:00:27
작성자양선희
정말 강인한 여성상의 전형같습니다
혼자이면서도 결코 외롭지 않게 많은이들에게 더욱 줄수있는 위치에 서있는 비야씨가 부럽습니다


:: 양선희 님 남기신 글

'바람의 딸' 한비야, 19살 청춘들을 만나다(1)
한겨레 19돌 창간특집으로 게재(2007.5.15) 된 "’’바람의 딸’’ 한비야, 19살 청춘들을 만나다"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비야님은 청소년진로길잡이 사이트에서 씨밀레로 활동중이시며, 본 기사는 한겨레신문 구본권 기자님의 허락을 받고 기재함을 알립니다.

기사원문보러가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09129.html


≫ “고통스러웠던 19살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비야는 없어요”라고 말하는 한비야(가운데)씨가 ‘19살 젊음’을 만났다. 서울 난지도 하늘공원에서 박천영(연세대 국제학부. 왼쪽부터), 오현영(회사원), 한비야, 권근영(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정성헌(한양대 정보통신학과)씨가 이야기를 나눈 뒤 파란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바람의 딸’ 한비야(49)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은 ‘바람’처럼 빠르고 바쁘다. 세계 곳곳에서 큰 재난이 터지면 현장으로 ‘48시간 안에’ 출동해야 한다. 올해도 아프리카는 물론 남아메리카 볼리비아의 홍수 재난 현장에 다녀왔다. 그런 한씨가 ‘19살 청춘들’을 만났다. 인생 상담 자리였다. 한양대 정보통신학과 정성헌씨, 산업디자이너 오현영씨, 연세대 국제학부 박천영씨,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권근영씨. 평소 한씨를 몸살나게 만나고 싶어했던 19살짜리 네 사람이 <한겨레> 창간 19돌 기념일을 앞두고 난지도 하늘공원에 모였다.

100만권이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인 한씨는 청소년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한씨에게도 ‘19살’은 각별하다. “19살의 한비야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어요”라고 한씨는 말한다.

열아홉살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으로 혹은 사회인으로 세상에 첫발을 내디디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결정적 순간’이기도 하다. 한비야씨에게 그 시절을 물었다.

“저한테 19살은 대학입시에서 떨어진 해였어요. 대학에 떨어진 이후의 인생을 계획해 본 적이 없어 낭떠러지 같았어요. 깜깜했어요. 가족 중에서 누구도 대학에 떨어진 적이 없어서 더 괴로웠어요. 중학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데다 바로 밑에 동생이 있는 터라, 재수는커녕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했어요.” 한씨는 여섯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생계를 보태야 했다. 대학에 간 것은 6년 뒤였고, 그것도 4년 내도록 장학금을 주는 대학이라 가능했다.

19살 대입 낙방 세상이 깜깜…6가지 아르바이트 하면서 생계
남자친구 엄마에 ‘고졸’ 모욕적 눈빛 받으며 두고두고 가시

다방 디제이, 번역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림까지 해야 했던 한씨는 “누구나 자기의 고통이 가장 힘들겠지만, 나 역시 고통스러운 19살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힘든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고졸이란 이유로 돈도 적게 받았고, 차가운 대접을 받았어요. 그게 나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었고, 더 고통스러웠어요.”

한씨는 큰맘 먹은듯 잊기 힘든 기억을 끄집어 냈다.

“그런 내게도 그때 스토커가 생겼어. 멀쩡한 대학생이 나를 따라다니며 하도 정성을 들이기에 사귀게 되었지. 한번은 그의 집엘 갔는데 그의 엄마가 내가 고졸이라는 것을 알고 너무나 깜짝 놀라면서 모욕적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거야. ‘아니 니가 고졸이란 말이야 ~’ 이렇게 얼굴에 써 있었어. ‘고졸인 니가 서울대 다니는 내 아들과 ~’. 그때 나는 그렇게 모욕적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은 그 아줌마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내 꿈과 가능성에 대해, 그리고 나의 인간적 가치에 대해선 아무 고려도 없는 그 아줌마의 눈빛이 내겐 두고두고 가시가 됐어. 그 다음부터는 반성했지. 나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런 눈빛을 보내지는 않았는지 하고.”

고통스럽던 19살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한비야’도 없었을 것

약자로서의 경험은 소중했다. 한씨는 그런 경험 덕분에 세상 곳곳의 약자를 돕는 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제가 구호현장에서 난민들을 대할 때, 식량을 타려고 줄을 선 것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인격적 가치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는 눈빛을 보내지는 않는지 돌아봐요.”

꿈과 좌절 사이에서 방황하는 19살 동생들에게 한비야씨는 말한다. “자존심 다치고 고민하고 방황하는 게 당연한 거야. 그런 과정 없이 평탄하게 인생길을 가는 애들을 부러워하지 마. 오히려 울퉁불퉁한 인생이 더 좋은 거야. 그게 나를 만든 거야!”

19살 동생들에게 한씨는 권했다. “나를 단단하게 만든 것은, 진부하지만 결국 책과 일기장이었어. 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인생을 만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봤고, 일기를 쓰면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했어. 책읽기와 일기가 없었다면 내 20대는 다 허당이야.”

“매일 일기 쓰는 버릇이 몇 안 되는 내 장점이야. 나는 이제 내 자식을 낳기 힘들게 됐지만 물리적 유전자 대신 사회적인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 그 중 하나는 일기 쓰기야. 일기는 감정의 디지털 카메라야. 생각날 때마다 바로 찍어놓는 거지. 나는 펜이 붙은 메모장을 항상 갖고 다녀. 없으면 이 누나가 1800원 하는 수첩 하나씩 사줄까?”

책과 일기장이 나를 지탱해 준 ‘힘…수첩 없어? 하나씩 사줄까?

인터뷰를 마친 하루 뒤 한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 그날 30년 전 19살 내 일기장을 못 찾아보고 나갔어요. 76년 즈음 19살이던 내 일기장 표지에는 이렇게 써놓았네요.” 한씨의 목소리가 살짝 떨린다.

“어떻게든 참고 견디자, 이 고비는 반드시 넘어갈 것이고 나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글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기사 원문은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09129.html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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